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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이해찬 회고록 / 203-08-28 / 4자 필승론 : TK의 노태우, PK의 김영삼, 충정의 김종칠, 호남의 김대중 논리
1. 내가 볼 때는 DJ가 양보해야 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이 있었어요. 이런 논리였어요. 이건 역사적인 결정이다. YS가 먼저 대통령을 하고 이어서 DJ가 하면 된다. 2. 4자 필승론 : 1987년 김대중 진영이 내 새운 논리, 16년 만에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았고 1노 3김의 맞대결이었다. TK의 노태우, PK의 김영삼, 김종필 충정권, 김대중이 수도권과 호남권의 지지를 받으면 승리한다는 논리다. 3. 갔더니 DJ가 자신의 곤궁한 처지를 토로하면서 도와달라는 거예요. 제야에서 평민당(평화민주당)을 도와달라. 오늘 이 자리에서 결단을 내달라. 안 그러면 나도 정계를 떠나야 할 거 같다.
2024.01.10 -
[발췌] 이해찬 회고록 / 203-08-25 / 문익환 목사의 추도사 민주주의는 누구의 이름을 쓰였는가
1. 이석규 열사 사건 : 1987년 8월 대우조선 노동자들은 노조 결성을 요구하는 파업을 시작. 평화 시위를 보장한다던 경찰은 노동자에게 최루탄을 일제히 사격했다. 노동자 이석규가 직격당했고 사망했다. 추모대회가 경찰 5만여 명의 원천봉쇄로 불발되었다. 2. 6월 29일 결국 노태우 민정당 대표가 대통령 직선제 개헌, 김대중 사면 복권, 구속자 석방 등 이른바 6·29 선언을 발표합니다. 시민 항쟁에 일단 항복을 선언한 것이었어요. 3. 80년 서울은 순전히 학생들의 시위였어요. 지도부가 없는 상태. 반면에 87년 6월 항쟁은 각 부분, 지역이 조직적으로 움직였어요. 국본이라는 지도부가 생기고. 4. 문익환 목사 추도사 : 먼저 간 열사들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민주주의의 길이 누구의 이름으로 쓰였는가를..
2024.01.05 -
[발췌] 이해찬 회고록 / 203-08-24 / 쉬운 행동강령을 세우자. 땡전뉴스를 거부하기 위한 9시 소등운동.
1.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유신헌법을 철폐하는 거지 헌법을 다시 쓰는 것이 아니다. 2. 3대 기본 원칙을 세웠지. 첫째 전국 동시다발 시위를 한다. 둘째 재야·정치권·종교계가 대연합 전선을 만든다. 셋째 일반 시민도 참여할 수 있도록 최저 수준의 행동 강령을 내세운다. 3. LNCA : '사회구성체논쟁'(사구체논쟁)에서 진화 분리된 개념. 다수파 LN(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과 소수파 CA(민족민주, 제헌의회)로 분립되었다. CA가 약화되자 PD(민중민주)가 약진. 4. '호국 철폐 민주헌법쟁취를 위한 6·10국민 대회'를 시작으로 국민 항쟁을 벌입니다. 누가 이걸 기획했을지 궁금합니다. 5. 일반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안들. '땡전뉴스'를 거부하자는 취지의 9시 소등 운동,..
2024.01.04 -
[발췌] 이해찬 회고록 / 203-08-23 / 마음에 새긴 명제 : 가치는 역사에서 방법은 현실에서.
1. 민주화 운동과 민족 통일은 하나다. 동전의 양면이다. 그게 문 목사님 명제였어. 민주화가 되어야 민족 통일이 가능하다고. 민족 통일이 되어야 민주화가 완성된다. 2. 보도지침. 제5공화국 당시 문화공보부가 은밀하게 하달한 보도에 대한 지시사항. 1958년 잡지 에 그 내용을 폭로, 뉴스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까지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3. 건대 사건. 반외세 자주화, 반독재 민주화, 조국 통일의 3대 구호를 내걸고, 1986년 10월 28일부터 31일까지 66시간 50분 동안 진행된 학생 민주화 운동. 4. 학생 1520여 명을 연행하고 1290명을 구속했다. 세계 최고를 기록한 사건이다. 5. 3월 3일에 기습시위를 시도했는데 원천봉쇄 당해서, 병력을 분산시킬 거면 전국 동시다발적으로 시위를 해야 ..
2024.01.03 -
[발췌] 이해찬 회고록 / 203-08-22 / 민청년의 상징이 두꺼비인 의미심장한 이유.
1. 학교 쪽을 자주 바라보지 말자고. 다들 데모하다가 제적된 사람들이니까 나이가 들어도 다들 학생운동을 바라보는 거야. 2. 민주화청년연합(민청년) 논의가 시작된 거 아닐까요? 83년 여름부터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어요. 3. 민청년이 만들어지고 나서 공개조직이 여럿 생겼지. 82년 말부터 해직교수협회, 민주언론운동협회, 문중문화운동협의회, 자율실천문인협의회 같은 단체들. 4. 민청년의 상징으로 두꺼비를 제안한 것도 의미심장했어요. 5. 두꺼비가 임신을 하면 일부러 뱀을 약 올린대. 두꺼비를 잡아먹으면 두꺼비 독 때문에 죽어. 그렇게 죽은 뱀을 양분 삼아 두꺼비 새끼들이 자라서 태어난다는 거야. 우리는 죽지만 대의를 이루는 거.
2024.01.03 -
[발췌] 이해찬 회고록 / 203-08-21 / 이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아서 영광이다. 김병곤의 최후진술.
1. 조서는 그냥 자기들 마음대로 썼으니까. 신문사 사장? 시켜주면 좋겠네요. 그러면 '김대중이 신문사 사장을 시켜주기로 했고' 이렇게 쓰는 식이었어요. 2. 성경은 어디에나 있어서 [욥기]를 자주 읽었어요. 시련을 당하는 이야기니까. 3. DJ가 최후진술에서 "나는 먼저 죽지만 먼저 죽은 나를 생각해서 이 땅에 정치보복이 없도록 해달라." 국제사회에 DJ 구명요구가 켜졌습니다. 4. 민청학련 때 김병곤 선배의 최후진술에 감명을 받았던 기억이 있어요. 이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아서 영광이라는.
2023.12.27 -
[발췌] 이해찬 회고록 / 203-08-18 / 닭 목가지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1979년 김영삼 의원 재명 사건 때
1. 3·1민주구국선언 사건 : 1976년 3월 1일, 3·1절 기념 미사가 열린 명동성당에서 문익환, 함석헌, 윤보선, 김대중 등 각계 인사들이 발표한 선언. 2. 김영삼 의원 재명 : 1979년 8월, 경찰기동대가 신민당사에 난입하여 폭행하고 연행, 이 과정에서 여공 김경숙이 사망한다. 10월 4일 김영삼은 국회의원에서 재명 된다. 이후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발표. 3. 노동운동을 찍어 누르려고 하다가 동일방직 사건, YH 사건 같은 게 일어났고,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여성 노동자 김경숙 씨가 투신했으니까. 4. 특히, 80년 3월 학원민주화, 계엄 철폐 요구가 터져 나왔어요. 이른바 '서울의 봄' 5. 15일 서울에는 10만 명이 모였었잖아요. 수도 한복판에 있는데 어떻게 진압하..
2023.12.18 -
[발췌] 이해찬 회고록 / 203-08-17 / 데모를 하고 싶어서 하는게 아닙니다.
1. 서울 농대에서 김상진 열사가 할복을 했어요. 그게 75년 4월이야. 데모가 달라졌지. 투쟁가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게 5월 22일 데모야. 긴급조치 9호 이후 최초의 시위였어요. 2. 공장 밥이 교도소 밥이랑 별 차이 없어요. 썩은 건 아니어도 반찬 수가 비슷해. 그때 유회 통상이 1년에 1500만 불 수출을 했으니까 상당히 돈을 잘 벌 때예요. 3. 내가 그런 현장을 직접 본 거예요. 박정희 정권 아래서 기업들이 어떤 특혜 속에서 돈을 벌고 있나, 노동자들이 어떤 대접을 받고 있나, 생생한 체험이라고 봐야지. 4. 장인어른하고는 따로 얘기를 좀 나눴어요. 데모를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상황이 있습니다. 하지만 가정도 책임지겠습니다. 5.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
2023.12.18 -
[발췌] 이해찬 회고록 / 203-08-14 / 감옥살이를 하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다양한 사람들.
1. 어떤 녀석이 도서관 앞에서 "불이야" 하고 막 소리 지르고 있어.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얘들이 뛰어나와. 그 앞에서 플래카드를 펼치니까 자연스럽게 시위대가 만들어졌어요. 2.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총학생연맹)은 전국 단위 학생운동이었다고 볼 수도 있는데요. 3. 기독교 신자가 있었는데 '막달라 마리아'라는 별명을 붙여줬어요. 감옥살이를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거기서 봤어. 4. 긴급조치 9호 : 1975년 5월 13일에 시행. 5년에 걸쳐 가장 오랫동안 지속된 긴급조치.
2023.12.11 -
[발췌] 이해찬 회고록 / 203-08-13 / 내가 다니던 골목에서 그런 일이 있었던 거야.
1. 하다 보니까 어떻게 그렇게 된 거지. 나는 우리 비서들에게도 구체적으로 뭘 안 시켜요. 방향만 알려주고 알아서 하라고 하는 거지. 2. 내가 먼저 그만두라고 한 사람이 거의 없어요. 30년 동안 정치하면서 해고시킨 사람이 딱 한 명 있어. 운전기사. 3. 70년에 전태일 열사가 분신을 했는데 나는 전혀 몰랐어요. 내가 중학교 때 다니던 청계천 평화시장 골목에서 그런 일이 있었던 거야. 4. '투표에서 이기고 개표에서 졌다' 이게 당시 대선을 상징하는 말이었어요. 한동안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그랬어. 이건 사회의 변동이다. 사회경제사 이런 게 중요하구나. 5. 부마항쟁 : 198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부산과 마산에서 유신 체제에 대항해 일어났던 항쟁, 부마민주화운동이라고도 한..
2023.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