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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5~169

[ 통일을 위하여 ]

한 민족인 분단되어 사는 경우는 무척 드뭅니다.

더구나 외부 세력의 침략으로 강제 분단된 아픔은 깊습니다.

수많은 애국열사들의 자주통일과 전체 투표를 주장하였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이런 열망을 무시해버립니다.

그 결과가 지금의 분단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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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48년 4월 남북 연석회의

미국은 민족분단과 남한 단독선거로 남한을 침략하고자 합니다.

이에 반발하여 1948년 3월 12일에 김구, 김규식, 조소앙 등 애국인사 7인은 공동성명을 발표합니다.

이어서 김규식, 안재홍의 민족자주 연맹도 결의문을 발표하죠.

 

이윽고 정당, 사회단체는 통일독립운동자 협의회를 결성합니다.

이런 저항의 불길은 점점 펴져나가 4월 19일, '남북한 제 제당 사회단체 연석회의'가 개최됩니다.

민족의 자주성과 투쟁 정신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일입니다.

 

 

 

2. 망국적인 5·10 단독선거

하지만 미군정은 기어코 단독선거를 강요합니다.

특별 계엄령을 내리고 경찰 특별 돌격대를 조직하여 무차별 탄압을 실시합니다.

결국 5월 10일 수많은 민중의 목숨을 짓밟으며 단독선거가 치러집니다.

이 선거는 오직 이승만 일파만이 입후보하였으며 참여도는 전체 인구의 1/3도 안되었습니다.

 

당연 이런 불법적인 투표가 인정될 리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반발했고 미군과 친일파 족속들은 폭력으로 대응했죠.

그 결과 350명이 학살되고 5천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검거, 투옥되었죠.

 

그런데 이런 학살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유엔 임시 위원단은 무엇을 하고 있던 걸까요?

이런 탄압의 현장은 철저히 가려진 체 정당한 투표였다는 허위보고를 해버렸습니다.

자유와 평화를 추구하는 유엔은 사실 미국의 꼭두각시였습니다.

 

 

3.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태동

미국의 폭정에 반발하여 북한의 김일성은 조국통일을 위한 장래 투쟁을 발표합니다. 

한민족끼리 자주적인 선거를 하자는 내용이지요.

이 소식은 남한 전역으로 펴져 1080명의 1차 대표를 선정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중에서는 방직공장의 여공인은 무려 1300여 명의 서명을 받아내는 놀라운 성과도 있었죠.

 

 

이렇게 남한과 북한에서 대의원을 선발하여 인민 대표자대회를 통해 선거가 이루어집니다. 

북한에서는 무려 99.9%, 남한에서는 77.5%라는 놀라운 참여율이 집계되었습니다.

그 결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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