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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은 저 멀리...

 

식상하지 않은 창의성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창의성이 중요하다고 합니다.(우리 사장님이 그랬어요~) 창의성과 혁신을 외치며 솔개와 같이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하는데요. 나이가 든 솔개는 닳아 무뎌진 부리와 발톱을 바위에 부딪쳐 깨버린다고 합니다. 그러면 다시 부리와 발톱이 날카롭게 새로 재생되어 새로 태어난다고 하죠. 이처럼 우리도 이런 혁신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실제 저렇게 하지도 않거니와 저려면 굶어 죽습니다. 어서 이상한 이야기를 듣고 세뇌 교육하는 사장님 나빠요.

 

불쌍한 솔개...

 

창의성은 일정한 방법으로 나타는 것이 아닙니다. '인원 10명을 모아놓으면 창의적인 아이디어 5개가 나온다'는 식의 법칙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많은 기업들은 이런 창의성에 대한 법칙과 원칙을 규정하려 합니다. 이게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혁신으로 이어지기 힘든 가장 큰 이유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럴 때 참고자료가 있으면 좋겠죠! 그래서 좋은 창의성과 혁신의 사례를 정리하였습니다.

 

 


특별팀 운영이 필요하다.

스마트폰, 포스트잇, 전자랜지 등 세상을 바꾼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처음에는 무척이나 연약합니다. 문제도 많고 남들한테 인정받기도 힘들죠. 그래서 지원받기도 힘듭니다. 노키아는 최초의 스마트폰을 만들었지만 임원들이 쓸데없는 걸 만들었다며 묵살시킨 것인 좋은 사례입니다. 그래서 창의성을 연구하고 육성할 수 있는 별도의 독립적인 팀이 필요한 것이죠.

 

 

 

1. 과학연구개발국

버나마 부시라는 미국 과학자가 있었습니다. 1940년 그는 뉴딜정책의 행정관 해리 홉킨스와 함께 미국 백악관에서 루스벨트 대통령한테 청을 하나 올립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기술격차를 따라잡아야 하니 별도 과학 기술 그룹을 만들어달라는 내용이죠. 그때 루스벨트 대통령은 '오케이'라는 짧은 답변을 하였고 회의는 10분 만에 끝났습니다.

 

그렇게 생긴 연구소가 바로 '과학연구개발국(OSRD, Office of Scientific Research and Development)입니다. 그리고 이 과학연구개발국에서 만든 레이더가 미래에 연합국을 승리로 이끈 핵심 열쇠가 됩니다. 그런데 당시 군대에도 과학 연구소가 있을 텐데 왜 또 연구소를 지었을까요? 바로 외부와 차단된 별도의 그룹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당시 군대는 과학기술이 아닌 더 많은 총과 더 많은 군인이 답이라고 생각했죠.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습니다. 1936년 군사위원회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연구 예산을 전함 한 척 제조비용의 5%로 삭감했습니다. 그 이유로 '중요 전력은 소총과 총검을 든 보병'이라고 하였죠.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말이지만, 그땐 그랬습니다.

 

과학연구개발국(OSRD)의 주요 의원들의 사진. 출처 : harrypotterboxoffice

 

 

2. U보트의 공포

당시 세계대전만 해도 더 많은 화력과 군대를 가진 쪽이 이긴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에 통수를 맞는 일이 생겼으니 바로 공포의 U보트입니다. 1941년 2월 히틀러는 영국을 포위하기 위해 잠수함 U보트를 출격시킵니다. 당시 사용하던 레이더는 장파장을 사용하여 부피도 크고 방대한 바다 전체를 탐지할 수도 없었죠. 그래서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을 공포의 상징이었던 유보트

 

당시 피해 통계를 보면 어마어마합니다. 1939년 75만 톤의 배를 잃었고, 1941년에는 430만 톤으로 대략 6배 정도로 급증합니다. 만들 수 있는 배보다 더 많은 수의 배가 바닷속으로 수장되었습니다. 그리고 1941년 12월에는 유보트는 미국으로 공격을 시도합니다. 당시 아무런 대비가 안 되어 있던 미국은 아무 저항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400척의 배를 침몰시키고, 5천 명의 사람들을 수장시켰습니다. 그중에서는 9577톤급 선박 노 니스(Norness) 호도 있었습니다.

 

유보트의 어뢰에 파괴된 노리스 호(tanker Norness). 출처 : uboat.net

 

 

3. 레이더의 혁신, 마이크로파

버나마 부시가 만든 과학연구개발국에는 앨프리드 리 루미스도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이 분은 초기 뇌전도 장비를 만들고 있었는데 버나마 부시의 연락을 받고 바로 이직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마이크로파 레이더 기술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참고로 당시 영국의 레이더 기술은 장파장(라디오파, 전파)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부피도 크고 탐지 영역도 넓지 않고 무엇보다 무척 무거워 비행기에 장착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보다 성능이 좋고 가벼운 단파장(마이크로파) 레이더가 절실했죠. 그리고 갈수록 불어나는 유보트의 엄청난 피해도 연구에 불을 댕겼습니다.

 

투자 은행가이자 마이르코파 레이더를 발명한 앨프리드 리 루미스(Alfred Lee Loomis)

 

1943년, 캐나다로 이동하는 수송대는 대서양 한가운데서 유보트를 마주합니다. 선장은 바로 지원 요청을 보내죠. 몇 시간 뒤 B-24 리버레이터(해방자) 폭격기가 도착합니다. 바로 루미스가 만든 레이더와 무선항법 장치를 싣고 말이죠. 그 결과 수중 속에 숨어있던 유보트를 선명하게 탐지해 냅니다. 그리고 정밀한 폭격으로 유보트는 한 차례도 공격을 성공시키지 못합니다. 위치가 뻔히 보이는 유보트는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죠.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격으로 처참히 패배합니다. 

 

루미스의 레이더를 장착한 B-24 리버레이터(B-24 Liberator)는 전쟁의 양상을 바꾼다.

이 전투를 계기로 전투의 양상이 바뀝니다. 1943년 3월만 해도 50만 톤에 달아하던 피해는 6월 2만 톤으로 95%나 감소했습니다. 더구나 마이크로파 레이더는 언제 어디서든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적군을 정교하게 폭격하여 엄청난 피해를 입히기까지 합니다. 레이더 덕분에 전쟁에서 이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4. 레이더의 초기 아이디어

이런 엄청난 레이더를 최초로 만든 사람은 루미스도 버나마 부시도 아닙니다. 무선통신 애호가인 리오 영과 호이트 테일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통신 실험을 하던 중 우연히 배가 지나가자 신호가 급격히 증대하는 것을 발견한 것이 그 시초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배가 아닌 하늘의 비행기도 똑같이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정말 우연의 발견이었죠. 그때 배가 지나가지 않거나, 비행기가 지나가지 않았다면 레이더 기술은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처음 전파 탐지 기술을 발견한 리오 영(leo young), 호이트 테일러(hoyt taylor)

 

1930년, 이 둘은 전국 항공기를 감지할 수 있는 경보 시스템에 대한 보고서를 군대에 제출합니다. 큰 성공을 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군대는 제안을 거절해버립니다. 결과를 보려면 2,3년 정도의 긴 시간이 걸린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말이죠. 심지어 어떤 간부는 '성공 가능성이 없는 허무한 꿈'이라고 비판하기까지 했죠. 

 

레이더 기술은 전쟁을 바꿀 정도로 엄청난 아이디어였지만 처음에는 이처럼 무시당하고 많은 사람들한테 거절당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그 장교들은 크게 후회하게 되죠. 

 

 

 

5. 버나마 부시의 육성 시스템

이런 불안정한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어 혁신을 이루어 내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바로 바나마 부시가 만든 과학기술연구원이 이 혁신을 이루어냈죠. 당시 전쟁 중 수많은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지만 거의 대부분이 사라져 버린 것은 이런 별도의 그룹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처음에는 아기처럼 무척 연약합니다. 아기가 온전히 성장하기 위해 어머니의 품과 보호가 필요하듯이 외부의 충격과 위협에서 아이디어를 보호할 수 있는 별도의 그룹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런 별도의 그룹만 만든다고 혁신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2차 세계대전 승리의 주역. 버니바 부시(Vannevar Bush) 출처 : 위키피디아

 

당시, 군인들은 이런 과학을 경시하고 천시하였습니다. 자신의 직위를 내세워 과학자들한테 갑질 하기 십상이었습니다. 버나마 부시는 이런 사람들을 '병사'라고 불렀죠. 그리고 과학연구개발국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사람들을 '예술가'라고 하였습니다. 혁신은 바로 이런 병사와 예술가가 조화를 이룰 때 생겨납니다. 현대에 혁신이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감성과 이성, 예술인과 군인, 연구와 경영. 서로간의 조화가 혁신의 핵심입니다.

 

버나마 부시는 학자로서 연구원들과 친숙했지만, 동시에 군인들과 어떻게 소통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획기적인 무기를 개발해도 정작 군인들이 써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죠. 그래서 군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한테 가장 필요한 것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현대에 혁신이 힘든 가장 이유는 예술과 병사 한쪽만 편애하기 때문입니다. 초기 스티브 잡스는 맥 컴퓨터에만 신경 쓰고 나머지는 무시한 결과 처참히 패배합니다. 포스트잇과 스카치테이프를 개발했던 3M은 식스시그마라는 품질경영에만 집중한 뒤로 더 이상 혁신적인 제품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최저 투입 대비 최고 효과라는 효율성만 강조하는 환경에서는 예술과 병사의 균형이 깨져 혁신이 나오지 않게 됩니다.

 

 


 

자연의 순환고리처럼

신이 만든 자연은 완벽한 균형과 조화를 이룹니다. 물은 증발하여 하늘로 올라가 비가 되어 내립니다. 먹이사슬은 효과적으로 적당한 개체수를 유지합니다. 사계절은 지구의 모든 생명의 생사를 조절합니다. 바로 이런 순환고리가 혁신의 핵심입니다. 

 

현실을 한번 볼까요? 현대 시대의 누구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습니다. 넘치는 정보와 과거와 비교도 안 되는 경험은 창의적인 환경을 만들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개개인의 아이디어가 순환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내가 아무리 창의적인 발견을 해도 회사는 돈이 안된다며 무시해버립니다. 반대로 경영자는 혁신과 창의성을 말하지만 정작 매출과 안정성에만 집착합니다. 돈이 있어야 회사를 운영할 수 있으니까요.

 

생과 사처럼 혁신과 매출은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서 내 아이디어를 무시하는 상사나 임원만이 혁신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닙니다. 어쩌면 나 자신도 그 원인일 수도 있지요. 창의성이 거절당했다고 좌절하거나 화를 내는 것은 혁신에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창의성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닌 회사의 경영과 조직의 창의성을 연결하고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안목이 중요한 것이죠. 혁신은 매출에 신경 쓰는 경영자와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자의 원활한 소통에서 생겨난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이것만으로도 혁신이 싹을 틔울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글을 엄청 길게 썼네요. 결론만 짧게 정리한다면 현대의 많은 기업들이 혁신과 창의성을 외치지만, 정작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창의성과 경영과의 균형을 잡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점만 명심하면 우리 회사나 조직은 혁신은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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