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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18~270

[ 전쟁에 가려진 진실 ]

6·25 전쟁은 우리 민족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이 전쟁으로 지금의 분단선이 명확해졌습니다.

'빨갱이'나 '반공' 같은 단어가 본격적으로 쓰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민족이 분단되고 미국한테 휘둘린 치욕적인 전쟁이죠.

여기서도 미국의 사악한 욕망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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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강 군대의 허울

미국은 예나 지금이나 최강의 군대라고 자부합니다.

1950년의 미국은 무려 2억 달러라는 엄청난 군사 원조를 단행합니다.

때문에 10만 명이라는 엄청난 수의 군대가 만들어졌습니다.

 

미군의 군사고문단 단장인 로버트 준장은 아시아 최강의 군대라고 자부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알고 있다시피 너무나 허망하게 북한군한테 밀려버립니다.

 

이때 그 유명한 이승만의 피난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시민들은 나 몰라라 하면서 돈을 찾아 바로 남쪽으로 도망가 버립니다.

그 와중에 한강 인도교를 폭파해버리죠.

때문에 남한 군대는 분단되어 버립니다.

 

 

2. 미국의 부당한 간섭

6·25 전쟁 당시 미군의 참전은 무척이나 허망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미군의 대통령인 트루먼의 취침 중 단 몇 마디로 말이죠.

참으로 어이없는 사건입니다.

 

 

어처구니없게도 전쟁같이 중요한 안건을 의회 승인도 없이 처리해버립니다.

한국군은 전의를 상실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군사개입 성명서를 몰래 발표하였습니다. 

 

 

이때부터 한반도를 정복이라는 욕심에 가득한 미국은 본심을 드러냅니다.

미군 개입의 명분은 38선의 회복이었지만 대놓고 전쟁을 하겠다고 하죠.

이 사건으로 인도, 이집트 등의 주요 나라는 유엔 참석을 거부하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유엔군이 설립되어 한반도에 발을 들여놓게 됩니다.

세계평화를 추구하는 유엔이 실은 미국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건입니다.

 

 

이때 미국에 미친 이승만은 맥아더에 한국군의 지휘권을 넘겨버리죠.

일명 대전 협정이라고 불리는 사건입니다.

조약이나 협정으로 맺은 것도 아닌데 아직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3. 북한군의 지지

그럼 북한군이 탈환한 지역의 사정이 어떠했을까요?

사실 남한 민중한테 북한군은 해방군이었습니다.

민족의 배신자인 이승만이 투옥했던 사람들을 풀어주고 친일파를 억압하였니까요.

 

미국의 폭력에 시달리던 남한 시민들은 북한 인민군의 편이 되었습니다.

전시 동원 명령을 내리자 불과 보름 만에 40여만 명이라는 엄청난 사람들이 지원했죠.

이승만에 대한 불만이 얼마나 높았는지 알 수 있는 사건입니다. 

 

 

북한군은 선거에 관한 정령을 정하여 점령지역에 실시합니다. 

당시 발표에 따르면 무려 97%라는 압도적인 찬성이 나왔다고 합니다. 

북한군은 배웠던 내용과는 다르게 민족의 자주독립과 통입을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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